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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조화 태을주 수행, 도공이야기
[한민족과 증산도] 서문 “역사를 잃어버린 자 역사에 휩쓸려 가리라.” 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한민족의 근세사를 돌아보면, 마지막 조선 왕조가 몰락의 위기에 내몰리던 무렵, 고종황제는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꺼져가는 국운을 다시 일으키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노력은 13년 만에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무너지고 맙니다. 이후 일본 식민통치 35년 동안, 환국-배달-단군조선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상고사는 모두 말살되었고, 약 8백만 명이 무참하게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당시 한민족은 일본인들에게 “고노 조센징 바카야로(이 조선인 바보다).” 라는 말을 들으며 치욕스러운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왜 잃어버린 역사를 꼭 알아야 하는가? 왜 우리 한국 문화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역사를 잃어버리면..
식민사학이란 무엇인가? 일제 잔재가 그대로 살아있는 한국 사학계 이병도와 식민사관의 망령 근대적 역사 서술과 조선사 편찬이라는 허울 좋은 구실로 우리 고대사를 삭제한 일제는 도처에 식민사관의 독버섯을 심어 놓고 물러갔다. 그 치명적 독버섯 중의 하나가 일제의 하수인 노릇을 했던 이병도이다. 이병도는 일본 역사 왜곡의 선봉장인 쓰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의 제자로, 1927년 조선사편수회가 조직을 확대 정비할 때 이마니시 류의 수사관보로 들어가서 한민족 고대사를 왜곡하는 데 헌신적으로 기여한 자이다. 일제가 물러간 후 그는 이승만의 후원을 등에 업고 서울대학교의 교수가 되어 일제 식민사학이 날조한 한민족사를 그대로 계승하거나 약간의 수정을 가하여 답습하였다. 그러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백남운 같은 사..
일제의 민족사 뿌리 말살 일제의 역사 왜곡 과정 ⊙ 역사서적 약탈 일본은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이후 민족의 근간을 바꾸기 위하여 민족의 서적을 약탈하였다. 1910년 11월부터 조선총독부 산하의 ‘취조국’으로 하여금 1911년 12월까지 조선총독부 관보(官報)를 근거로 하여 ‘51종 약 20만권'정도를 약탈했다. 물론 역사서 또한 포함되었다. 서울에서는 종로 일대의 서점을, 지방에서는 서점, 향교, 서원, 구가(舊家), 양반가, 세도가 등을 샅샅이 수색하였다. 다음해 12월말까지 1년 2개월 동안 계속된 제 1차 서적 색출에서 얼마나 압수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다만 조선총독부 관보를 근거로 판매금지한 서적과 수거된 서적은 총 51종 20여만 권이라고, 광복 후 제헌국회사와 군국일본 조선강점 36년..
외래 사상에 의한 왜곡 서구 제국주의 침략사를 자세히 관철해 보면 다른 민족을 침탈할 때는 반드시 그들의 종교가 기수역할을 하여 진주하게 되는데, 이것은 한 손에 성격과 한 손에 칼을 쥔 유일신 신앙자 들의 속성이며, 타민족에 대한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 종속을 강요하였다. 유교에 의한 폐해
역사왜곡의 실상 (한민족의 뿌리 역사는 뿌리부터 왜곡되었습니다. 왜곡된 과거의 역사와 문화의 진실을 밝히고 바로 잡아야 합니다! 동북아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이 땅의 한민족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미래가 걸린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한민족 역사 왜곡의 주범, 삼독(三毒) 단재 신채호 선생은 “우리 민족의 역사가 왜 왜곡되었느냐? 왜적이 침범해서 역사책을 불태우고, 내란이 일어나서 우리 나라 역사책을 불태워서 왜곡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나라의 역사가들의 의해서’ 왜곡이 됐다.” 고 이야기합니다. 동북아 인류 창세문명의 주역이었던 한민족의 뿌리역사가 송두리째 말살되면서 인류의 뿌리문화를 찾을 수 없는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흔히 한민족 역사 왜곡을 말할 때 중독(中毒), 왜독(倭毒), 양독(洋..